오늘을 즐기는 건 그만, 짠테크로 지갑 봉인
최근 경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은 두 달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빅스텝이 이루어졌습니다. IMF 이후 최대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며 사람들의 소비 패턴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차별화가 주목받는 이유와는 정반대의 모습인 소비 방어와 짠테크입니다.
소비 방어로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유행을 끄는 건 바로 '무지출 챌린지'입니다. 이 챌린지는 말 그대로 하루에 지출을 전혀 하지 않고 성공 시 이를 자신의 SNS에 인증하는 것인데요. 집에서 냉장고에 있는 걸 활용해 식사를 간단하게 해결하고 밖에서도 약속을 잡지 않고 회사에 구비된 커피를 마시는 등 다양한 노하우와 방법이 있습니다.
짠테크는 돈을 아끼는 재테크를 의미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나 마감 할인을 통한 구매로 지출을 줄이거나 사용에 문제가 없는 리퍼 제품을 찾는 것 등이 있습니다. 소비를 줄이는 것 외에도 기프티콘을 사고팔며 시중보다 저렴한 소비를 하는 것, 캐시백 서비스 이용하기, 또는 적립 앱을 통해 포인트 모으기 등의 활동도 있습니다.
기프티콘 시장은 중고나라의 조사를 통해서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모바일 상품권이나 쿠폰의 거래 규모는 월별로 73억, 88억, 그리고 98억 원이었습니다. 이러한 추세를 미루어 보았을 때 7월의 거래 규모는 약 11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는데요. 과거 중고나라에서 거래되던 모바일 상품권이나 쿠폰은 주로 가격대가 높은 백화점 상품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4,000원 이하의 상품들이 활발하게 등록되고 판매되고 있는 것이죠.
기프티콘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니콘내콘' 플랫폼에서도 이러한 시장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6월 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기프티콘 상품의 구매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67% 증가한 것으로 집계된 것인데요. 니콘내콘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한 카테고리는 카페, 편의점, 치킨 순이었습니다. 중고나라의 세대별 주요 거래 브랜드도 카페와 편의점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유통업계에서도 이러한 짠테크의 흐름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마감 할인은 지난해 론칭하고 이례적인 이용 건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GS리테일의 '마감 할인 판매'는 론칭 초기인 지난 8월과 비교했을 때 지난달의 이용 건수가 약 283% 증가했습니다. CU의 '그린세이브'도 지난달 이용 건수가 전월 대비 17.3% 늘었는데요. 세븐일레븐의 '라스트오더'는 30%, 이마트24는 122% 오르며 달라진 소비 패턴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리퍼 제품 또한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품질이 떨어져 소비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저렴한 가격에 새 제품과 큰 차이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리퍼 제품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며 소비자뿐만 아니라 업체 또한 매출과 재고 처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어 적극적인 판매에 나섰습니다.
위메프의 최근 3개월 리퍼 제품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약 51%가 늘었고 티몬의 알뜰 쇼핑 기획관도 지난 5월 매출이 전월보다 279% 증가했습니다. G마켓의 최근 한 달 명품 리퍼나 중고 제품 판매량은 지난해 동기와 비교했을 때 39%가 올랐습니다.
패션 업계도 커지는 중고 의류 시장으로 짠테크의 영향을 실감하고 있는데요. 중고 의류 리커머스 시장은 최근 2030 사이에서 저렴하고 환경 오염과 자원 낭비를 줄일 수 있는 선택으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기존에 중고나라나 당근마켓 등 중고 제품을 거래하는 플랫폼에서 한 카테고리를 차지했던 중고 의류는 최근 관련 리커머스만 다루는 패션 플랫폼들의 등장으로 별도의 제품군처럼 취급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패션 리커머스 플랫폼 중 하나인 '리클'은 헌 옷을 비대면으로 수거하고 kg 단위로 가격을 매깁니다. 그리고 수거한 옷은 깨끗하게 세탁해서 새 옷처럼 온라인으로 다시 판매하는데요. 전문 플랫폼이 아니더라도 중고 의류의 거래는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중고나라의 여성 의류 등록 비중은 2020년에 22%에 불과했지만, 올해에는 45%로 집계되었습니다.
리커머스는 이미 미국에서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로 2020년 미국 소매업계가 큰 타격을 받자 기업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며 자사몰과 재판매 사이트를 도입한 것인데요.
IKEA는 이미 조립된 가구를 가져온 고객에게 스토어 크레딧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재판매가 승인된 제품들은 할인된 가격으로 지정된 곳에서 다시 구매할 수 있습니다. Lululemon도 특별한 결함이 없거나 착용 흔적이 심하지 않은 의류와 액세서리를 스토어 크레딧으로 바꿔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Apple은 Trade In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새 제품을 구매하려는 고객이 기존에 쓰던 기기를 보상 판매해주거나 판매가 어려운 제품은 무료로 재활용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리커머스 시장은 ESG 경영의 일환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금리를 뛰어넘을 정도로 불안정한 미국의 물가로 인해 지출 축소를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인데요. 리커머스로 인해 브랜드는 더 저렴하게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는 더 저렴하게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면 양쪽 모두가 지속가능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유가 바로 리커머스 시장이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짠테크의 일환으로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